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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현철 "10집 나오면 짐벗을 것 같아요"···데뷔 30년
[인터뷰]김현철 "10집 나오면 짐벗을 것 같아요"···데뷔 30년
  • 바른경제
  • 승인 2019.04.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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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기자 = "물론 저도 음악 스타일과 음악 자체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면 인정을 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거예요."

좋은 음악은 오래 간다.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명제를 가수 김현철(50)은 상기시켜 준다. 새로움(뉴)과 복고(레트로)를 합친 뉴트로가 유행하면서 시티팝 장르인 그의 음악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1989년 1집 타이틀곡 '오랜만에'와 1992년 2집 타이틀곡 '그런대로'가 대표적이다.

시티팝은 경제부흥을 누린 1980년대 일본에서 유행한 도회적인 장르다. 국내에서는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이 장르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선봉에는 김현철이 있었다. 미디엄 템포의 세련되면서 고급스러운 편곡, 맑고 감각적인 멜로디와 사운드가 특징이었다. 김현철은 "당시에 시티팝이라는 장르를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시티팝이라고 하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너무 빠른 타이밍에 터지면, 가수로서 깊이가 없어질 수 있어요. 너무 늦게 터지면 생활이 어려울 수 있고. 그래서 인생이 어렵죠"라고 했다.

김현철의 음악은 재조명을 앞두고 있다. 그룹 ‘소녀시대’ 태연(30)이 김현철의 동료인 가수 윤종신(50)이 벌이는 '월간 윤종신×빈폴 뮤직 프로젝트-이제 서른'의 하나로 5월에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리메이크해서 발표하기 때문이다.

청량하면서 살랑거리는 멜로디와 리듬이 일품인 '춘천 가는 기차'는 한국 대중음악의 첫 보사노바 격이다. 보사노바는 삼바에 감각적인 모던재즈가 더해진 브라질의 대중음악이다.

역시 1집에 실린 곡인데, 이 곡이 인기를 얻으면서 원래 타이틀곡인 '오랜만에'를 제치고 마치 이 앨범의 타이틀곡처럼 됐다. "1집을 들은 분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앨범은 많이 팔리지 않았었습니다. 3집 '달의 몰락'이 인기를 끌었고 1집이 다시 조명되면서 '춘천 가는 기차'를 좋아하게 된 거죠. 태연씨가 워낙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니, 잘 소화할 거라 믿습니다."

김현철을 언급할 때 라디오 DJ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MBC 라디오 '밤의 디스크쇼' DJ였던 그는 지난해까지 MBC FM4U '오후의 발견'을 진행했다. 음악작업을 위해 DJ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은 그는 약 6개월 만인 지난 1일 MBC FM4U '골든디스크'를 통해 DJ 자리로 복귀했다. '골든디스크'는 오전 11시에 방송한다. 밤 방송으로 시작해 오후를 거쳐 오전으로 시간대가 점점 당겨졌다.

"라디오는 항상 떨리고 긴장이 됩니다. 오후 방송을 시작했을 때는 제게 개인적인 변화가 많았던 시기였어요. 장가도 가고 애도 낳고 하면서 여러 변화를 겪었죠." 그가 '골든디스크' 첫날 마이크를 잡았을 때, 날씨는 화창했고 미세먼지도 없었다. “당분간은 이런 기분일 거 같다. 저희 같은 '라디오 키즈'들에게 라디오는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김현철은 '학전 청년'이기도 했다. 1991년 문을 연 학전은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발원지'다. 웬만한 뮤지션의 존재감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듯한 이 공간은 현재 뮤지컬과 아동극 위주로 공연하지만 1990년대 라이브 콘서트의 성지로 통했다.

"학전에서 처음 (보컬그룹) '낯선사람들' 공연을 봤고, 이소라씨를 처음 만났고, 뮤지컬 '지하철 1호선'도 보고, (김)광석이 형 공연도 봤죠. 무엇보다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는 것이 놀라워요. 대학로에 많은 극장이 있지만 많이 흥망성쇠를 겪었잖아요."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가 5월19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어게인, 학전 콘서트'라는 타이틀로 펼치는 가수들의 릴레이 공연에 김현철도 참여한다. 9~10일 무대에 오른다. 게스트로 학전 무대에 오른 적은 있으나 이곳에서 본인의 이름을 걸고 공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는 곳이에요. 원래 소극장 공연은 콘셉트를 찾기 힘들어요. 가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볼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기운을 함께 나누는 자리죠. 이번 공연이 제 다음 앨범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어요. 세션 멤버들이 이번 앨범을 녹음하는 멤버들이라서요."

요즘 세대는 MBC TV '복면가왕' 연예인 판정단으로 김현철을 기억할 수 있지만 30대 이상에게 그는 걸출한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다. 1988년 조동익의 주선으로 '우리노래 전시회 3'에서 박학기 노래의 작곡자 겸 키보드 연주자로 가요계에 발을 들인 그는 '제2의 유재하'로 통했다. 박학기 1집 '향기로운 추억', 장필순 1집 '어느새'에 참여하며 음악적 재능을 뽐냈다.

특히 1999년 발표한 1집은 작곡가, 프로듀서 등 크레디트 전면에 모두 이름을 올리며 음악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됐다. 도회적이지만 차갑지 않고, 섬세하지만 예민하지 않으며, 세련됐지만 젠체하지 않은 사운드는 대중음악계 조용한 혁명과도 같았다. 이 음반은 국내 명반을 꼽는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김현철은 "팝송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조동진 선배님, 하덕규 선배님 노래를 상당히 좋아했고요. (포크듀오) '어떤날'의 앨범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1987년) 유재하 1집 역시 정말 대단했죠. 팝송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세련됨의 극치였어요"라고 말했다.

김현철은 당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퓨전 재즈의 기운도 머금고 있었다. 조동익을 중심으로 손진태, 함춘호,그리고 김현철로 구성됐던 연주 프로젝트 '야사'다. 한국판 '포플레이'로 명명해도 될법한 이 팀은 퓨전 재즈 연주에 획을 그었다.

최근 드라마, 영화 OST 인기가 절정이지만 김현철의 OST의 인기 역시 대단했다. 영화 '그대 안의 블루'(1992)와 '시월애'(2000)가 대표적이다. 감성적인 곡들은 영화의 인기에 날개를 달았다. 두 작품은 모두 홍익대 미대 출신 이현승 감독의 작품이다. 홍대 공대를 나온 김현철은 선배인 이 감독의 영화가 자신과 잘 맞았다.

김현철의 화법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겸손한 것이 아니에요. 객관적인 사실 만을 기반으로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현철은 연예기획사 FE엔터테인먼트 대표다. 또래 가수들보다 일찌감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했다. 김갑수, 서인석 등 주로 중견, 원로 배우들이 소속됐다. 음악가들은 라디, 일레인, 조커 등 프로듀싱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 중심으로 포진됐다.

김현철은 처음에 음악 제작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사이 좋은 후배와도 앨범을 제작하다 보면 '노사 관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산하 인디 레이블 'E.UT'를 만든 이유는 자신이 음악 작업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선택한 후배들이 아니에요. 저희 회사 직원들이 일일이 직접 다 알아보고 만나보고 계약을 한 뮤지션들이죠. 모두 스스로 곡을 만들고 앨범을 제작하는 친구들입니다. 저희는 그저 그 친구들이 본인의 음악적 색깔을 내도록 옆에서 도울 뿐이죠. 저 역시 첫 음반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존중해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봐요."

김현철 팬들은 최근 설레어 하고 있다. 그가 13년만인 올해 정규 10집 발매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9집 '토크 어바웃 러브'가 그의 마지막 앨범이다. 5월 중순 10집에 실리는 4곡을 선공개할 예정이다.

김현철은 "이번 앨범 역시 제가 하던 음악이에요. 느리지 않는 미디엄 템포의 곡들이죠"라고 귀띔했다. 올해 안에 10집이 나오면 "짐을 벗을 것 같아요"라는 마음이다. 몇 년 동안 그를 만나는 사람 모두 "새 앨범은 언제 나와요?"라고 묻는 것이 일이었다.

그 다음 앨범도 이렇게 오랜 공백을 거쳐야 하나. "일단 무계획이 계획이에요. 하하. 이번 10집이 나오면 이제 음악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거죠. 곡을 싱글로 냈다, EP로 냈다 자유롭게 음악을 하는 거예요. 메이는 것 없이 다양한 분들과도 작업하고 싶어요."

데뷔 30주년 김현철, 여전히 음악을 가장 좋아하고 음악 앞에서는 한 없는 설렘을 드러낸다.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