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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선대와 결별? '김정은조선' 선포한 10.10열병식
[창넘어북한] 선대와 결별? '김정은조선' 선포한 10.10열병식
  • 바른경제
  • 승인 2020.10.1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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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진 박수성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면목 없다며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진솔한 사과를 하고, 울먹이며 고맙다고 해 국내외 주목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초대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공개 역시 관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열병식을 관통하는 주목할 메시지는 김 위원장이 더 이상 김일성과 김정일 유훈에 의존하지 않는 지도자라는 점입니다. 이번 주 은 이를 보여주는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의 장면들을 담았습니다.



지난 주말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동영상을 보셨는지요. 국내 방송사 일부가 북한 조선중앙TV가 녹화중계한 장면을 거의 그대로 중계한 때문에 본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저는 그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30년 가까이 북한 문제를 다뤄왔지만 이번만큼 의미가 큰 행사는 보기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부터 이번 열병식을 본 소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강영진 에디터입니다.

제가 방송을 진행하지만 이번 방송 내용중 큰 부분을 저와 함께 일하는 박수성 기자가 채웠다는 걸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열병식에서 국내외 언론들이 가장 주목했던 대목은 ‘김정은의 눈물’과 ‘괴물 같은’ 초대형 ICBM이었습니다.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중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의 눈물을 두고 ‘애민의 눈물’이냐 아니면 ‘악어의 눈물’이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또 초대형 ICBM은 덩치가 너무 커서 이동식 발사대가 포장도로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고 이동 속도가 느려서 발사 준비 단계가 쉽게 포착되기 때문에 공격당할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용 ‘괴물’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일부 제시됐습니다.

두 가지 사실은 얼핏 가장 눈에 띄는 파격일 듯합니다.

그렇지만 저와 박수성 기자는 동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 이외의 많은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위에 언급한 사실들을 훨씬 뛰어넘는 메시지가 열병식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김정은이 더 이상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유훈에 의존하지 않는 위대한 지도자로 부각된 점입니다. 김정은의 눈물이나 괴물 같은 ICBM은 그 같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지엽적인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북한은 더 이상 김일성 조선이나 김정일 조선이 아니라 김정은 조선입니다. 실제로 열병식 말미에 아나운서가 ‘김정은 조선’이라는 어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열병식은 바로 그 ‘김정은 조선’이 인민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나라이자 전세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강대국임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열병식을 하나하나 뜯어보겠습니다.

이번 열병식은 10일 0시에 시작됐습니다. 밤을 새우다시피 행사가 진행됐지요. 열병식을 밤에 연 것은 아마도 인류역사상 처음일 겁니다.

열병식은 군대의 질서정연한 움직임과 화려한 복장, 번쩍이는 무기들을 선보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를 통해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최고 권력자의 권위를 강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것이 잘 보이는 대낮에 하는 것이 인류 역사의 관례였습니다. 북한이 그 관례를 과감히 깨트렸습니다.

형식만이 아닙니다. 열병식 시작을 장식한 전투기 편대는 날개에 색색의 LED 조명을 부착하고 하늘을 헤집었습니다. 플레어를 요란하게 터트리면서 탄성을 이끌어내는 장면도 연출했지요. 이 전투기들이 하늘에 불꽃을 쏘아 75라는 숫자를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동원된 전투기들도 북한 보유 최신기종인 미그-29 등입니다. 최첨단의 기획으로 행사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북한군에는 우리 군보다 2계급 높은 원수라는 계급이 있습니다. 대장 위에 차수, 다음에 원수입니다. 북한은 최근 리병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총참모장을 원수로 승진시켰습니다.

두 사람이 북한군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는 점 때문이지요. 리병철은 북한의 핵무력 개발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고 박정천은 포병 출신으로 북한이 자랑하는 각종 최신 다연장포 등을 실전 배치한 공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열병식을 보면서 저는 두 사람을 원수로 승진시킨 게 그들의 공로보다는 열병식에서 역할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열병식에서 각 부대들의 움직임은 제병지휘관이 통제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 국군의 날 행상에는 통상 원스타급 제병지휘관이 부대를 통제합니다. 북한도 예전의 열병식에선 투스타가 제병지휘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열병식에서 제병지휘관은 원수인 박정천 총참모장이었습니다. 그가 열병식 참가 부대들을 통솔하면서 리병철 원수에게 열병식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하고 리병철은 열병식에 참여하는 각 부대들을 일일이 방문해 점검했습니다. 이어서 리병철 원수가 김정은에게 열병이 준비됐다고 보고한 뒤 열병식이 시작됐습니다. 두 명의 원수가 준비한 끝에 김정은한테 보고한 겁니다.

김정은은 두 사람의 원수를 저 아래 발 밑에 두고 보고를 받고 명령을 내리는 하늘같은 존재임을 강조하는 연출입니다.

또 이번 열병식에서 북한군의 사실상 모든 편제가 공개됐습니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

전 김정일 시대 평양을 여러 차례 드나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평양시내 건물들 가운데 관공서 명칭을 내건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각 기관 소재지가 대외비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평양의 전화번호부조차 특급 비밀이었습니다. 심지어 수시로 바뀝니다. 우리 정보기관이 새로 바뀐 전화번호부를 입수하려고 매번 상당한 비용을 들여가며 입수하려 했다는 것도 뒤에 알게 됐지요.

그랬던 북한이 이번에 무려 75개 부대의 작전 기능과 부대장의 이름과 계급, 부대규모까지 낱낱이 밝혔습니다. 심지어 비밀작전을 전담하는 특수부대와 김정은을 경호하는 부대는 물론, 미사일 부대와 각종 군사학교들까지도 말입니다. 북한군 조직 전체를 낱낱이 공개한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 5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열고 북한군의 조직 편제를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결정을 했습니다.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와 초대형 다연장포 및 전술 미사일 등 새롭게 갖추게 된 무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편한 겁니다. 당시 하지 않은 개편내용을 이번에 모두 공개했습니다.

핵과 전략미사일, 각종 최첨단 전술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 막강한 화력의 포병전력, 다양한 목적을 가진 여러 특수부대와 화생방부대,새로 개발된 장갑차와 탱크, 자주포, 전투차량 등 각종 전투장비, 심지어 최신 군복과 야간 투시경 등 개인 전투장비까지 모두 공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북한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군사강국임을 최대한 드러내고 싶었나 봅니다.

김정은 연설에도 많은 주목할 내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김정은은 연설을 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유엔 경제제재와 코로나 19, 홍수와 태풍 등 자연재해로 올해 큰 어려움을 겪는 북한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면서 말이죠.

그런데요. 연설에서 김정은은 과거와 달리 김일성과 김정일을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수령님과 장군님의 위업을 넘겨받은 자기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표현에 포함시켜서 말입니다.

오히려 연설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나와 인민’입니다. 내가 잘못해서 인민들이 고생하지만 인민들이 나를 믿고 따라줘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고맙다는 식입니다.

곧이어 자랑으로 바뀝니다. 코로나 19 감염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점, 군사력이 5년전에 비해 크게 발전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 인민이 고생을 모르고 유족한 문명생활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김정은에게 북한은 더 이상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나만의 땅이요, 나만의 나라입니다.

장황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번 행사를 보면서 느낀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잘 짜인 각본과 치밀한 연출’입니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창의성도 뛰어났습니다. 김정은 조선 시대가 열렸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한편의 멋진 쇼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2015년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열병식과 비교해 보시면 제 느낌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옆길로 새는 느낌이지만 북한에 이런 훌륭한 공연 연출자가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일부 언론들이 김여정이 행사를 준비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 트럼프 미 대통령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에서 미국의 독립기념일 행사 불꽃놀이 DVD를 보고 싶다고 한 것이 김여정을 이번 행사 기획자로 추정하는 빌미가 됐을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김여정이 아닌 다른 사람을 떠올립니다. 바로 현송월 선전선동부 부부장입니다. 44세로 젊고, 모란봉악단,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출신으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현송월은, 2년전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단장으로 오기도 했습니다. 공연을 연출하고 감독한 경험이 많은 그의 재능이 이번에 제대로 발휘된 건 아닐까요? 물론 현송월 혼자서 한 것은 아닐 겁니다.

김정은은 지난 8월13일 정치국회의에서 “경축행사를 최상의 수준에서 특색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일 정치국회의에서 이번 75주년 행사를 “품들여 준비”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김정은 본인도 이번 행사 준비에 깊숙이 관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pzcmaria@newsis.com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