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중 ‘호남중등 야구대회’ 2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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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중 ‘호남중등 야구대회’ 2관왕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4.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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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호남중등학교 야구대회 시상식 장면(1928)./사진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제1회 호남중등학교 야구대회 시상식 장면(1928)./사진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중학교 야구팀은 전라북도 이리체육회가 주최한 제1회 호남중등학교 야구대회(1928년 9월 15~16일) 우승기를 거머쥔다.

대회 참가팀은 군산중학교(아래 군산중), 목포상업, 강경상업, 전주고보, 이리농림 등 다섯 개 팀이었다.

경기는 이리 철도운동장에서 열렸다.

군산중은 2회전에서 전주고보를 2-0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라 목포상업을 4-2로 물리치고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군산중은 이듬해 6월 개최된 제2회 대회(광주중, 군산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참가)에도 출전한다.

그러나 예선에서 광주중을 만나 4-9로 패한다.

익산군 체육협회가 주최한 제3회 대회(광주중, 대전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군산중 참가)에서도 군산중은 준결승에서 광주중에 6-7로 석패한다.

당시 광주중은 2회, 3회 대회를 연패(連覇)한 강팀이었다.

군산중은 1930년 6월 이리 철도운동장에서 개최된 제4회 대회(강경상업, 고창고보, 광주중, 대전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군산중)와 그해 9월 열린 제5회 대회(전주고보, 이리농림, 고창고보, 대전중, 목포상업, 군산중)에도 참가했으나 예선에서 탈락한다.

호남중등학교 야구대회는 이리체육협회와 익산군체육협회가 교대로 개최했는데, 제6회 대회(1931)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1931년은 일제가 군사를 일으켜 그해 9월 18일 남만주 철도를 고의로 폭파하고, 이를 계기로 '만주사변(柳條湖事件)'을 일으킨 해였다.

그 후 일제는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1932년 3월 괴뢰 만주국을 세워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제7회 대회는 1932년 여름 익산군체육협회 주최로 이리 철도운동장에서 이틀 동안(6월 18일~19일) 열렸다.

이 대회에서 군산중은 준결승에서 목포상업을 5-2로 누르고, 결승에서 이리농림을 4-1로 꺾어 두 번째 우승기를 거머쥔다.

아래는 당시 군산중 선수 명단.

야마나카(山中·유격수), 미즈노(水野·투수), 야마자키(山崎·3루수), 쿠아나(桑名·포수), 하마다(濱田·1루수), 후지다(藤田·좌익수), 야마모토(山本·중견수), 오사카(大阪·우익수), 지미(自見田·2루수) 등.

제7회 대회는 군산중을 비롯해 목포상업, 대전중, 전주고보, 이리농림 등 다섯 개 팀이 참가하여 자웅을 겨뤘다.

이후 기록은 옛날 신문에도, <한국야구사 연표>에도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전쟁 희생자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학교

일제강점기 군산중학교 본관과 강당 1928년./사진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일제강점기 군산중학교 본관과 강당 1928년./사진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기록에 따르면 군산중은 1928년 1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후 광복이 되는 1945년까지 17년 동안 조선인 졸업생은 146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수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자녀들의 중학교 진학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조선인 학생들은 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다는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전북의 이리농림, 전주북중, 고창고보 등은 조선인들에게 명문으로 꼽혔다.

그러나 군산중은 선발 기준이 엄격해 조선인은 극소수 인원만 입학이 허용됐다.

입학 후에도 질시와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성적은 상위권을 차지했으며, 기량이 뛰어난 운동(야구, 스모 등) 선수도 여럿 배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시기(1943~1945), 군산중 조선인 학생들은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고, 교육 또한 피해가 컸다.

한국전쟁 때는 많은 학생이 학도병(학도 의용군)으로 전선에 투입되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97명)를 낸 학교로 기록되고 있다. (계속)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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