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조선인 체육단체(야구, 농구, 축구 등)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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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조선인 체육단체(야구, 농구, 축구 등) 발족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4.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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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체육회 사무실(1950년대)/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체육회 사무실(1950년대)/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조선인으로 구성된 ‘군산체육회’가 평화축구단과 농구단을 모체로 1930년 7월 발족한다.

당시 군산체육회는 제 기능을 발휘할 만큼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고, 이렇다 할 사업이나 활동을 펼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극심했던 도시에서 단독으로 체육회를 만든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군산의 조선인 체육은 1932년 당시 외곽지였던 경장리 매립지(지금의 금암동)에 공설운동장이 조성되고 각 단체가 창단 또는 재조직되면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1930년 이전에도 몇 개의 체육 단체가 활발히 활동했으나 한 때 바람으로 끝났고, 그동안 소문만 돌던 농구클럽 출범과 축구클럽의 부활, 야구구락부(척우단 후신) 재조직 등으로 전기를 마련한다.

군산의 성인 야구는 진즉 척우단(拓友團)이 결성되어 활동하여 오다가 1929년 봄 김수복, 방한회, 전대학 씨 등의 발기로 야구구락부(野球俱樂部)가 조직되어 전의용 씨 인솔로 전조선야구대회에 출전하였다.

그 후 선수들의 이산, 사망 등으로 침체기를 맞는다.

군산 야구팀은 1932년 6월 16일 호남지방 원정 중인 경성전기(京城電氣) 야구팀과의 경기에서 대패한다.

제대로 된 연습장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던 군산 야구팀이 노련한 경성전기 팀에게 29개의 장·단타를 내주면서 2-14로 패한 것.

군산 야구팀은 1933년 7월 양태보, 이완동 등 뜻있는 야구인들이 중앙 진출을 목표로 재조직하였다.

이후 전주 야구팀과 친선경기를 가졌으며 24-0으로 대승한다.

야구구락부 간부는 전의용, 이창근, 김수복 등 3명이었으며 군산부 동영정(신영동) 동화의원(東華醫院) 내에 연락처를 설치하고 회원들(22명) 회비로 조직을 운영하였다.

침체에 빠진 성인 야구 재조직에 앞장섰던 양태보와 이완동은 각각 투수와 포수 출신으로 일반 및 직장 야구팀을 육성, 전국대회와 지역 도시대항 야구대회에 참가하여 명성을 떨친 군산 야구 발전의 공로자로 알려진다.

군산공설운동장 농구코트앞에서 군산시 농구단(1940년대)/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공설운동장 농구코트앞에서 군산시 농구단(1940년대)/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군산 농구구락부(群山 籠球俱樂部)는 졸업식을 마치고 귀향한 유학생 중심으로 1933년 6월 1일 창단된다.

농구구락부는 창단 직후 전주로 출정하여 완산구락부(전주팀)와 경기를 가졌으나 석패(29-31) 하였다.

절치부심,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군산팀은 전주팀을 초청, 군산보통학교 농구코트에서 열린 설욕전에서 대승(56-34)을 거둔다.

사무실은 소화통(중앙로 2가) 금삼석판소(金森石版所)에 있었으며, 간부는 서홍선, 도병수, 박상규, 강봉준 등 4명이었다.

농구구락부 역시 회원들(25명) 회비로 경비를 충당하였다.

당시 신문은 “군산 농구구락부는 금년(1934년) 부터는 어김없이 중앙무대(中央舞臺)에 참가(參加)할 것으로서 방금 맹연습(猛練習) 중인바 군산 각계 운동계(群山 各界 運動系)에 있어 가장 장래(將來)가 유망시(有望視) 되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군산 축구구락부(群山 蹴球俱樂部)는 계림축구단(1920년 창단) 후신으로 1933년 11월 부활하였다.

사무실은 영정(영동) 공영양화점(共榮洋靴店) 내에 마련했으며 간부는 김해옥, 김병수, 전서봉, 최상태, 정정산, 김인수 등 6명이었다.

축구구락부 역시 회원들(30명) 회비로 운영하였다.

당시 신문은 “전북은 물론 호남 일대에서 으뜸으로 꼽을 만큼 위세가 당당했던 계림축구단은 단명(團名)까지 ‘군산축구구락부’로 개칭하고 전북 강팀으로 알려진 이리농림학교 축구팀을 초청하여 공중운동장에서 일전(一戰)을 치른바 3-1로 호성적(好成績)까지 냈으며 중앙에도 진출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계림축구단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군산 지역 축구발전에 공적이 많은 팀으로 기록되고 있다.

20~30년대 군산 지역은 10개가 넘는 일반 및 직장 축구팀의 각축장이 됐던 그야말로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였다. (계속)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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