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 체육 발전의 요람이었던 ‘공설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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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 체육 발전의 요람이었던 ‘공설운동장’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4.2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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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부민운동대회 열리는 공설운동장. 1934년 10월5일 동아일보./사진출처=군산야구100년사
군산 부민운동대회 열리는 공설운동장. 1934년 10월5일 동아일보./사진출처=군산야구100년사

 

1915년에 발행된 군산 지역 지도를 보면 지금의 중동, 금암동, 신영동, 죽성동 일부 지역은 갈대가 무성한 갯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는 그 일대를 매립, 고깃배 수백 척이 정박할 수 있는 포구(째보선창)를 조성한다.

선창 주변에는 호남에서 가장 큰 가등정미소와 수협공판장 건물을 짓고, 공설운동장(일출운동장)도 조성한다.

일제강점기 군산에는 공공운동장이 두 개 있었다.

한 곳은 지금의 서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신사광장’으로 불렸다.

이 곳은 체육시설이 전무해서 각종 집회와 일본식 씨름(스모) 등이 열리는 광장 수준이었다.

따라서 종합운동장이 조성되기 전에는 전국규모 체육대회를 시내 대형정미소 벼 건조장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였다.

스포츠 인구가 증가하자 군산부(群山府)는 1932년 공사비 1만 원을 들여 옥구군 경장리 매립지(현 공설시장 뒤 폐철도 부근)에 야구, 축구, 농구, 권투, 사이클, 궁술대회 등이 가능한 공설운동장을 개장하고 일반인에게 사용료를 받는다.

당시에는 ‘공중운동장’, ‘공마당’ 등으로 불렸으며, 일출정(日出町)에 자리한 운동장이라 하여 ‘일출운동장’이라 하였다.

운동기구 보관창고와 스탠드를 갖춘 현대식 공설운동장이 완공되자 체육행사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각종 릴레이, 유명 상점 순방경기, 군산-개정 도보경기 등이 포함된 ‘군산 부민 운동대회’(시민 체육대회)가 연례행사로 열린다. 정(町) 대항 축구대회를 비롯해 야구, 농구, 사이클 등의 전국규모 대회가 개최된다.

평시엔 선수들 연습장(training)으로, 아이들 놀이터로 이용됐던 군산 체육 발전의 요람이었다.

광복 후에는 다양한 민간행사와 기관 주도 대회가 열린다.

군산체육회 주최 제3회(1948), 제4회(1949) 전국축구대회와 야구대회, 농구대회, 복싱 선수권 대회 등이 개최된다.

해마다 동(洞)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고, 군산을 방문한 백범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가 이곳에서 연설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군부대(신병보충대)가 주둔했다가 휴전 후 충남 논산(연무대)으로 옮겨간다.

국경일 행사 열리는 공설운동장. 1960년대./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국경일 행사 열리는 공설운동장. 1960년대./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종합예술의 전당 역할도 했던 체육시설

공설운동장은 6·25기념일, 휴전협정일, 국군의 날 등 한국전쟁 관련 기념일이 되면 ‘북진통일!’ ‘김일성 도당을 때려 부수자!’ 등의 구호가 푸른 하늘로 펴져 나갔다.

한때는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 생활공간이 되었고, 풍물패, 창극 등 전통 민속공연이 자주 열렸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이 다가오면 후보들 유세 대결장이 되기도 하였다.

1971년 4월 22일에는 대규모 청중이 구름처럼 운집한 가운데 당시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유세를 펼쳤다.

합동유세 날이면 공설운동장은 부잣집 잔치마당 분위기로 바뀌었다.

차일로 하늘을 가린 떡장수, 팥죽장수, 막걸리 장수 등이 아침부터 좌판을 벌여놓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하였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둘러쓴 아주머니가 풀빵 굽는 모습도 군침 삼키며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쇠머리찰떡은 더없는 눈요깃거리였다.

단상의 후보 이름을 연호하며 분위기 띄우는 청년 당원들, 운동장 바닥에 신문지 깔고 앉아 후보의 유세를 경청하는 다양한 표정의 촌로들.

잔치국수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로 허기를 채우고 "어험, 자~알 먹었소!"라고 양반 기침을 곁들이며 수염에 묻은 국물을 손으로 닦아내는 두루마기 차림의 시골 할아버지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밖에 삼일절, 광복절 등 국경일 행사, 시내 초등학교 연합운동회, 각종 궐기대회, 시민 노래자랑 및 위안공연, 흑백영화 및 대한뉴스 상영, 서커스 공연, 장병 위문공연, 시민의 날 행사, 저명인사 영결식 및 추모식 등이 열리는 ‘종합 예술의 전당’이었으나 1978년 폐쇄되고 주택단지로 변해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계속)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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