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맛' 대첩] 군산에 정착한 ‘베트남 웰빙 음식’ (31-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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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맛' 대첩] 군산에 정착한 ‘베트남 웰빙 음식’ (31-끝)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08.12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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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 고기국물에 국수 말아 먹던 것에서 유래… 19세기 말부터
음식점 5~ 6개 영업 중… 원조격은 2010년 개업한 ‘베트남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 vs 태국쌀국수(독특한 향) … 외관상 비슷 육수 차이
/사진 출처=포호아(차돌양지쌀국수)
/사진 출처=포호아(차돌양지쌀국수)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교류 역사는 약 800년에 달하고 있다.

12세기 베트남의 첫 통일국가인 리 왕조 몰락과 함께 왕족 및 그 유민들의 고려 망명으로 맺은 인연에서 출발했다.

근대와 현대에도 그 인연이 계속됐다. 근대기에는 식민지라는 아픔 속에 독립투쟁을 하면서 선각자들끼리 교류했지만 양국 간의 본격 교류는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이었다. 한국은 이 전쟁에 참전, 신형 소총(M16)으로 무장할 수 있었고 그곳에 풍부한 TV 등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루트였을 뿐 아니라 그곳의 풍속을 이해하는 장으로 활용했다.

베트남 통일전쟁으로 한동안 양국은 단절됐다가 재교류에 들어간 것은 양국 간 국교정상화 이후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우리나라 총각과 베트남 처녀들 간의 혼인이 빈번해지면서 양국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베트남 출신이나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들이 대도시와 중‧소도시를 막론하고 하나둘씩 음식점을 열면서 베트남의 음식점들이 본격 국내에 상륙하게 된 것이다.

베트남 음식이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베트남 쌀국수.

웰빙 열품을 타고 낮은 칼로리와 담백한 맛, 여기에 쌀로 만든 국수라는 점이 쌀 문화권이 한국에서 쌀국수가 성공한 배경이 된 듯하다. 군산에는 2010년 이후 이들 음식점들이 하나둘씩이 들어섰다.

/사진 출처=포호아(홍두깨 쌀국수)
/사진 출처=포호아(홍두깨 쌀국수)

 

# 베트남과 한국의 첫 인연… ‘리 왕조 일족’ 고려 이주

화산 이씨와 베트남과의 관계를 찾기 위해선 12세기 베트남 역사와 화산 이씨 시조인 이용상(1174~?·李龍祥·베트남어로 리롱떵)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용상은 1174년 베트남(당시 국명은 대월) 제6대 황제 영종의 7남으로 태어났다.

당시는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장기집권 왕조인 ‘리(Ly) 왕조’가 쇠퇴의 길을 걷던 시기다.

이용상의 조카가 1210년 제8대 황제(혜종)에 오른 뒤 리 왕조의 외척이었던 진수도(1194~1264·陳守度)가 국정을 위임받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리 왕조의 몰락이 시작됐다.

진수도는 혜종의 딸을 임금에 앉힌 뒤 자신의 조카와 결혼시키고 왕위를 남편에게 넘기도록 하는 방식으로 역성혁명을 일으켰다. 왕조가 이씨에서 진씨로 넘어가면서 대규모 살육이 이뤄진다. 혜종의 장례식에 종친들과 왕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 진수도가 이씨 왕족의 피붙이들을 도륙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씨 가문의 후손들은 대부분 멸족을 당했다. 이용상은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1226년 이용상은 일족과 부하들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쳤다.

그는 남송과 대만, 금나라, 몽골 등을 거쳐 지금의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이르렀다.

그가 베트남 최초의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베트남 왕자가 표류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려 조정에선 크게 환영하며 이용상이 고려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화산포에 도착한 것을 고려해 ‘화산 이씨’란 성씨(姓氏)도 조정이 하사했다.

# 베트남의 자연환경이 만든 음식… 베트남 쌀국수의 탄생

베트남은 전국민의 7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표적 농업국가이다.

그 중에서도 쌀을 경작하기 위한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연간 최대 3모작도 가능하다.

이러한 자연환경 때문에 베트남의 한해 쌀 생산량은 베트남 전체 농업 생산량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처럼 풍부한 쌀을 가공하며 만든 음식이 바로 쌀국수다.

‘퍼(Pho)’라고 불리는 쌀국수는 베트남 사람들이 분주한 아침의 간편한 식사 혹은 출출할 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대중적 음식이다. 쌀국수는 쫄깃하게 삶아낸 면발에 쇠고기나 닭 육수를 넣고 신선한 야채를 듬뿍 곁들여 먹는 건강식이다.

베트남의 대표음식이 된 쌀국수의 역사는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인 19세기 말 방직공업이 번성했던 베트남 남딘의 공장에서 하루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고깃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던 것이 쌀국수의 시초다.

쌀국수의 유래에 대한 또 다른 강력한 설은 프랑스 야채수프인 뽀오페(pot au feu)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 베트남에 소개된 프랑스의 요리 뽀오레가 베트남의 식재료에 맞게끔 변형되었다는 설로서 퍼(Pho)의 국물을 만들 때 사용되는 것과 동일하며 베트남 이외의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이러한 조리방법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설을 뒷받침한다.

또한 예부터 베트남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을 중요하게 생각해 소를 신성시하였기 때문에 식용하는 일이 드물었다.

이 같은 사실은 베트남에서 프랑스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퍼(Pho)가 만들어졌다는 설을 유력하게 보는 것이다.

/사진 출처=포호아(힘줄쌀국수)
/사진 출처=포호아(힘줄쌀국수)

 

쌀국수는 하노이 유역에서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은 후 1950년대에 이르러 남부지방과의 교류가 급속하게 이뤄지는 과정을 통해 입지를 확고히 한다.

1954년 제네바 협약으로 북부지역은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프랑스군은 북위 17도선 이남으로 철군하게 된다.

이 당시 남하한 사람들중 상당수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문제 때문에 사이공 등의 대도시 주변이나 해외로 망명을 신청하게 되고 이들이 생계를 위해 음식점을 차리거나 퍼(Pho)를 등에 매고 다니면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쌀국수는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남쪽 사람들의 입맛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게 된다.

베트남의 쌀국수는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혹은 육수의 종류에 따라 수십 가지 맛으로 나눌 수 있고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쌀국수는 쇠고기 육수에 숙주나물과 고수를 얹은 뒤 새콤한 라임즙을 짜 넣어 먹는다.

쌀국수의 종류는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가 퍼보((Pho bo)인데 소꼬리와 갈비, 사태에 계피, 향료 등을 함께 넣어 오랫동안 우려낸 달콤한 소고기 편육을 얹어 먹는 소고기 쌀국수다.

또 다른 하나는 퍼가(Phoga)로 닭의 고기와 뼈를 푹 고아서 만든 담백한 닭 국물에 닭살을 찢어 올린 닭고기 쌀국수다.

한편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태국도 쌀국수를 대표 음식으로 하고 있다.

주식으로 밥을 먹고 있는 태국은 쌀가루로 만든 쿠이티오, 카놈친 등의 면이 존재할 정도로 쌀국수를 즐겨 먹는 국가다. 다만 양국의 쌀국수는 육수에서 차이가 있다.

태국은 중국, 인도, 유럽의 음식문화가 융합되어 다양한 향신료가 독특한 향을 낸다. 베트남 쌀국수에 비해 태국쌀국수는 자극적이면서 맛이 더 진하고 양념이 강한 편이다.

# 베트남 음식 쌀국수의 군산 상륙… 2010년대 본격

베트남쌀국수가 군산에 선보인 것은 서류상 2010년 10월 오식도동에 문을 연 베트남쌀국수다. 이후 2016년 6월 베트남 현지인이 직접요리하는 티노콴이 영업한 이후 미스 사이공(2017년 4월), 메오메오(2018년 7월) , 포아이니 영동점(2018년 10월) 등이  문을 열었다.

베트남 음식을 하는 군산시청 주변의 월남식 쌈밥 소담촌도 얼마 전부터 문을 열고 성업 중이다.

베트남 음식과 고유의 한국식이 결합한 음식과 그 음식점들이 나타나는 등 한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메오메오는 군산쌀국수 음식점 중에서도 전통성을 강조, 독특한 내 외부 인테리어와 다양한 베트남 메뉴로 이색 맛집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쌀국수 외에도 각종 볶음밥과 월남쌈, 유린기 등 메뉴가 다양해 여러 사람이 함께 음식점을 찾아도 개인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고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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