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스마일피처’ 송상복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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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스마일피처’ 송상복 ①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8.1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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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피처 송상복./사진=군산야구 100년사
스마일피처 송상복./사진=군산야구 100년사

다른 지역 사람들이 군산(群山) 이야기할 때 ‘세계 최장 새만금’,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빵집 이성당’, ‘채만식의 <탁류>’ 등 넷 중 한두 개는 꼭 꼽는다.

놀랍게도 10명 중 3~4명은 ‘역전의 명수’를 앞세운다.

그들에게 ‘역전의 명수들 중 누구를 아느냐’고 물으면 ‘스마일피처(송상복)’는 꼭 들어간다.

재미있는 현상은 송상복은 몰라도 스마일피처는 기억한다는 것이다. 송상복은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전(군산상고-부산고)에서 아리송한 미소로 9회까지 마운드를 지켜내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그해 가을 건강 악화로 웃음을 잃는다.

졸업 후에는 건축현장 막노동꾼, 모교 야구감독, 뒤늦은 대학진학, 트럭 조수, 군산시의회 의원 등 험난한 인생 역정을 걸어왔다. 요즘도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고 성장

스마일피처 송상복(宋相福). 그는 1953년 봄 군산시 서흥남동 산동네에서 막내(3남 2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목선(木船) 한 척을 부리는 어엿한 선주였다.

그럼에도 살림은 항상 쪼들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까,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어머니는 영세민 취로사업장에 나가기 시작하였고, 노임 대신 받아오는 밀가루에 5남매가 매달려 살았다.

“(혀를 끌끌 차며)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숨을 고른 뒤)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벌어서 여섯 식구가 먹고살았죠. 쌀밥은커녕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보릿고개 시절이었다고 하지만, 유달리 어렵게 살았어요. 밀가루 한 봉지가 하루 식량이었거든요."

"물을 흥건하게 부어 수제비나 국수를 끓여 먹었는데, 그것도 성찬이었죠. 끼니를 거르는 날도 있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사진으로도 뵌 적이 없어요. (한숨)”

귀여움을 독차지해야할 막내 송상복은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성장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난 빈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게 느껴졌다. 외로움과 가난의 음습한 그림자는 어린 상복을 괴롭혔다.

가난에 시달리다 보니 성격도 내성적으로 변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추억은 신문지로 둘둘 말아 부뚜막에 올려놓은 칼국수 다발밖에 없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생각할 때마다 이 모습 저 모습으로 바뀐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와 인연

1960년대 초 남초등학교 운동장(산동네 초가들이 눈길을 끈다)/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1960년대 초 남초등학교 운동장(산동네 초가들이 눈길을 끈다)/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송상복은 1962년 봄 군산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잘못된 호적을 서둘러 정정해준 형수 덕분이었다.

이듬해 집에서 가까운 남초등학교로 전학한다. 새로 사귄 급우들과 시멘트 종이를 접어 동네야구를 시작한다.

4학년 때는 김용태 야구부 감독의 눈에 띄어 처음으로 배트와 글러브를 착용한다. 야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 야구가 밥보다 좋았다. 얼마나 좋은지 하늘로 날아가는 공도 점프해서 잡을 것 같았다.

“신문지는 귀했고, 비료 포대나 시멘트 포대로 글러브를 만들어 ‘종이 야구’를 했는데요."

"흥남동 산동네 아이들, 오룡동 말랭이에 사는 아이들, 미원동 피난민촌 아이들, 삼학동 모시산 근처에 사는 아이들이 모여서 시합을 했습니다."

"모두 가난한 동네 애들이었지만 실력은 대단했죠. 게임도 프로야구처럼 돌아가면서 리그전을 펼쳤구요. (웃음)"

"그렇게 하다가 김용태 감독님 눈에 들었던 것이죠.”

처음 포지션은 1루수.

몇 달 후에는 감독 제의로 투수 마운드에 오른다.

그해 가을 전남 여수에서 개최된 영호남 초등학교 야구대회에 출전해서 우승한다.

다음 해에도 같은 대회에서 연이어 우승한다.

어린 싹들의 기량을 눈여겨본 당시 전북야구협회 이용일 회장과 군산남중·상고 김병문 교장은 송상복, 김일권, 양종수, 조양연, 김기철 등 남초등학교 선수 11명을 특기생으로 군산남중에 입학시켜 1968년 야구부를 창단한다.

군산남중 야구팀은 창단 첫해부터 전국대회에 출전했으나 우승기는 너무 멀리에 있었다. 그래도 4강 대열에는 몇 차례 올라 전국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특히 송상복, 김일권, 양종수는 그때부터 군산상고 야구팀을 이끌어갈 재목으로 꼽힌다. 3학년이 되자 다른 지역 고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졸업을 앞두고는 더욱 잦아졌다.

하지만 남초등학교 출신 11명은 스카우트 손길을 외면하고 1971년 군산상고(야구부 4기)에 진학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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