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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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홈런왕’ 김봉연 ③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9.0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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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에이스 시절 최관수 감독의 투구 폼(1960년대)./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기업은행 에이스 시절 최관수 감독의 투구 폼(1960년대)./사진=군산 야구 100년사

 

“아, 야구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군산상고는 야구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해가 다르게 성장한다.

전북 지역 유일한 팀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전주상고를 누르고 전북 대표권을 차지한다. 전국 대회에서도 강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전(全) 일본 고교야구선수권대회인 ‘고시엥’(甲子園)대회 70년도 우승팀 사가미(相模) 고교팀 초청 한국대표 선발전이 1970년 8월 23일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 대회는 한일 양국의 고교야구 실력을 저울질하는 빅 이벤트에 출전할 대표팀 선발전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신출내기 군산상고는 예상을 뒤엎고 강호 동대문상고를 물리치는 기염을 토한다.

군산상고는 신예 김봉연을 마운드에 세워 동대문상고 타봉(打棒)을 산발 5안타로 봉쇄, 9회 말 1점을 허용하는 반면, 공격에서는 7회와 8회에 김봉연의 2루타와 박만천의 좌전안타, 나창기의 적시타 등 안타 11개를 몰아치며 대거 6점을 뽑아 6-1로 낙승, 준결승에 진출한다.

이날 완투승을 기록한 김봉연은 최관수 감독을 만난 이후 야구에 눈을 뜨게 된다.

 

“최관수 감독님은 인천 동산고 시절 당대 최고봉으로 빠른 직구와 예리한 커브, 타자 앞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드롭(Drop)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명투수로 평판이 자자했던 분입니다."

"3학년 때 ‘이영민 타격상’을 받아 야구 천재로 소문이 났고, 기업은행 에이스였던 분이어서 투타에 위력이 대단했죠."

"감독님의 투구와 타격 시범 때마다 ‘아, 야구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하고 놀라면서 몸과 머리로 익혔습니다.”

 

최 감독의 타격 폼은 초보인 김봉연에게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그대로 따라 하면 5할대 타율도 가능할 것 같았다.

방법은 거울 앞에서 어깨가 아프도록 흉내 내는 것. 노력은 헛되지 않아 얼마 후에는 최 감독의 위력적인 투구를 자유자재로 쳐낼 정도의 수준에 오른다.

실력이 궤도에 오르면서 4번 타자 자리도 확보한다. 야구의 진정한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왼쪽 어깨가 약간 처진 것도 그때 후유증이란다.

투타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로 성장한 김봉연은, 무명에 불과했던 군산상고가 대한민국 고교야구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정상을 차지하는 데 주역이 된다.

유난히 무더웠던 1972년 7월 19일 오후 7시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제26회 황금사자기 부산고와의 결승 9회 말 역전 우승이었다.

그해 10월에는 전국 우수고교초청 군산상고-배명고 경기에서 장쾌한 아치를 그리는 두 개의 홈런을 작렬, 팀을 승리(4-0)로 이끌면서 미래 ‘홈런왕’을 예고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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