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수 관장과 군산체육관 上] 60년대 초 월명동에 복싱체육관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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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 관장과 군산체육관 上] 60년대 초 월명동에 복싱체육관 문을 열다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0.10.2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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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싱메카… 복싱발전, 교육 기능 등 종합적인 문화공간 큰 역할
70‧80년대 복싱 중흥기 산실… 이원석‧ 서상영 등 국제급 선수 배출 본향
국내 아아추어 정신적 지도자 추앙
군산체육관
군산체육관

 

‘근대유산의 보고’ 월명동 일원에 한국복싱의 산실로 우뚝 서 온 군산체육관을 지역복싱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여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전북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역사를 지닌 군산체육관은 70‧ 80년대 한국복싱 중흥기의 주춧돌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복싱영웅을 낳은 도장이자,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곳의 복싱기념관 조성 여론은 김완수 관장과 관련된 스토리텔링과 함께 수많은 스타들이 배출됐다는 점에서 과거 아날로그적인 기념공간으로서 의미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과거-현재- 미래 스토리텔링 가능성에 주목할 자산도 상당하다.

요약하자면 이곳의 산증인 김완수 관장의 휴먼스토리를 비롯한 군산체육관 건립 과정의 범시민적인 관심, 즉 당시 전국적인 인물이었던 쌍천 이영춘 박사 주도와 고판남 세풍그룹회장, 강정준 학교법인 정은학원(호원대) 설립자 겸 백화양주 사장 등의 주도아래 시작됐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김 관장의 제자 중 수많은 복싱스타 등이 배출됐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의 침탈역사를 넘어설 역사적인 가치를 담았던 점도 의미를 더하고 있다.

군산에서 이보다 더한 현대적인 눈길을 끌 이야깃거리는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와 관련된 내용 이외 얼마나 될까. 물론 거물이어서 널리 알려졌던 지역인물도 있고, 지역 전통학교들과 관련된 내용도 있기는 하다.

중소도시의 어느 복싱체육관이 이런 사랑을 받은 이유는 설립 65년 동안 시민들과 함께 온 복싱지도자와 그의 숨결을 담은 공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

<투데이 군산>은 군산체육관을 복싱기념관으로 건립하자는 의미를 살리자는 논의의 장을 두 차례(상, 하)에 걸쳐 다뤘다.

 

스토리 텔링 1… 김완수 관장과 지역복싱 역사

군산체육관의 신화는 김완수라는 걸출한 복싱지도자 때문이지, 그 건물이 지역을 대표하는 공간은 본래 아니었다.

김 관장(1931~ )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군산으로 이사왔다. 신풍초에 입학, 일본 교장 관사에서 키우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중앙초로 전학했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 군산중에 진학, 복싱에 전념했다.

복싱선수로 입문한 후 그가 한 차원 도약한 것은 그 당시 군산복싱계의 전설과 같은 손용(작고) 사범으로부터 소질을 인정받으면서다.

해방정국의 군산복싱의 선구자인 손 사범은 일제강점기에 이름을 날렸는데 일본의 권성(拳聖)이라 불린 피스톤 호리구치와 대결에서 난타전 끝에 청각기능을 잃어 군산으로 낙향, 복싱체육관을 설립했다.

호리구치는 186전 145승(88KO) 25패 16무 전적을 자랑하는 일본 권투계의 신화적 존재다. 이는 일본 최다 KO승 기록보유자다.

중앙대에 입학, 졸업할 때까지 인파이터 복싱을 구사했던 김 관장은 전국학생선수권 대회와 전국체전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정상권 선수로 발돋움하지만 20대 중반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1955년 김판술 전의원(전 농림부장관: 작고)과 군산중고 동창회 후원으로 둔율동에 복싱체육관을 열었다.

사회복지시설 부지에 설립했던 이 체육관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헐리어 자신의 삶터를 잃고 방황하던 중 60년대 초 영화동소재 군산종합체육관으로 이전해 다시 제자들을 육성하게 된다.

임시로 이전한 체육관 시절을 벗어난 것은 1966년. 지금의 월명동으로 이전한 그는 군산체육관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이전과정에는 숱한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어렸을 적에 부친을 잃은 그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이영춘(작고) 박사의 도움으로 지금의 체육관 부지를 구입했지만 원금은 물론 체육관 건립 비용이 턱없이 부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단다.

처가의 도움과 함께 이 박사는 물론 당시 한국합판 고판남 사장, 백화양조 강정준 사장,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 이용구 호남제분 사장(경성고무 전무 재직), 안형채 만수병원장 등 지역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군산체육관을 완공하고 제자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

군산체육관은 세월의 흐름 속에 시설은 낡고 초라해 보이기도 했지만, 과거 지역 복싱의 산실로 이곳을 거쳐 간 많은 선수들의 수상 이력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곳은 과거 배고프고 힘든 시절, 그 현실을 극복하고 성공을 위해 복싱을 시작한 선수들을 보듬고 돌봐주는 참 스승이 있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은 80년대 한국복싱 부흥기를 이끈 주춧돌 역할을 했다.

이곳 출신 수련생들은 서울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느 초‧ 중‧ 고의 졸업 후 홈 커밍데이(졸업 30주년)처럼 열고 있을 정도다.

물론 군산체육관은 김완수 관장이 고령으로 은퇴한 이후 상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권투 영화의 주된 촬영코스로 이용되고 있다.

복싱의 대를 이어온 둘째 아들은 군산대 주변에서 군산체육관 2관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제자들도 복싱체육관을 열고 후진양성을 통해 전국적인 선수를 발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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