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22] 중국 음식의 성지 동령길…마치 ‘요리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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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22] 중국 음식의 성지 동령길…마치 ‘요리 역사박물관’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1.06.01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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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중국인으로부터 전수된 식감에 ‘맛의 고장’ 전라도 특유 맛 가미
동해루‧ 쌍성루‧ 만춘향 등 추억의 음식점 … 빈해원‧ 국제반점 등이 대표
각종 해산물‧ 야채 등 산해진미 레시피로 전국 대표 짬뽕 맛 자랑
‘새로운 음식’의 원류는 초마면 vs 나가사끼 짬뽕일까 논쟁 중
동령길의 짬뽕특화거리. / 사진=투데이군산
동령길의 짬뽕특화거리. / 사진=투데이군산

 

근대기 화교의 본격 이주는 군산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특히 120년 화교 이주 역사 중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은 중국 음식의 유입이 아닐까 싶다.

군산의 화교들은 초기 이주 때와 달리 포목상을 벗어나 음식점 운영 등으로 경제적 기반을 잡았지만 일제패망과 함께 귀국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본국으로 가려던 이들에게 중국 공산당의 대륙 장악은 장벽으로 작용했다.

자신들의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군산화교들은 해방과 한국전쟁기 등을 거치면서 다른 직업 대신 음식점으로 삶을 영위했다.

 

당시로선 ‘듣보잡’ 음식 등장… 중국 음식+ 지역특산품 합작품

이들은 본격적인 현지화를 도모했다.

이들은 빈해원과 국제반점, 신풍원, 영빈각, 영화원, 홍영장, 용문각(2005년 폐업) 등의 간판을 내걸고 지역 중화요리업계를 주도했다. 이들은 한국인 식성을 살려 토착화에 성공한 경우다.

이들 중국집은 다양한 중국 음식을 무기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고 일부는 음식을 특화해서 오늘날까지 군산의 맛을 대표하고 있다.

이들 음식점의 주된 요리는 짬뽕‧ 짜장면‧ 탕수욕 등이지만 그 면면을 보면 다양하다. 이 음식 맛을 보고 연구해온 세프들이 중국음식을 고유 중국음식 아닌, 한국인의 입맛을 살리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런 유명 중국집들은 최근에는 군산을 맛의 고장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초기 화교들은 장미동소재 전북은행 군산지점 인근 주변에 하나둘씩 음식점을 개점하고 군산에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일제강점기에 문을 연 동해루(전북은행 군산지점 인근)는 카페 제직스의 옛 자리이고 청요리가 유명했단다. 옛 쌍성루는 서울자개 앞 양키시장 입구에, 옛 시청 뒤편 김비뇨기과 밑의 커피숍 자리에는 평화원이 있었단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국 음식점 만춘향도 장년층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곳 중 하나다.

만춘향은 이곳의 주인이 별세하면서 안타깝게 문을 닫았다.

화교였던 주인은 중식(중화요리) 뿐 아니라 한식과 일식, 양식 등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 백화점을 만들어 군산의 음식문화를 선도했다.

만춘향의 요리는 약간 느끼하면서 차이나 향이 진한 반면 빈해원의 요리는 순하고 담백했다는 게 1970~ 80년대 지역 미식가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 중 대표적인 음식점은 빈해원.

중국인들은 아니지만, 지역에선 한국적인 중국 음식을 만들어 군산의 대표적인 맛집을 이끌고 있는 음식점들도 있다. 물론 전국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빈해원‧ 홍영장 등과 달리 긴 역사를 아니지만 복성루, 쌍용반점, 지린성, 왕산, 서원반점 등이 바로 그들이다.

 

‘살아있는 중국음식박물관’ 빈해원… 2018년 문화재 등록

빈해원. / 사진=투데이군산
빈해원. / 사진=투데이군산

 

본래 물짜장으로 유명했던 빈해원은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 음식점이다. 이런 역사성 때문에 지난해 8월 등록문화재(제723호)가 됐다.

화교 왕근석씨가 1952년 장미동에서 개업한 뒤 1965년 현재 건물로 옮겨왔고 1970년대 중반 증축했다.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로 개방된 느낌이 강한 내부 구조가 특징이다. 특유의 개방감 때문에 2014년 ‘남자가 사랑할 때’ 촬영 당시에는 불법 도박장으로 꾸며졌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데다 군산생활사의 한장면을 보여주는 곳이라 문화재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업 중인 식당이 문화재로 등록되기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고창 조양식당을 제외하면 유일한 사례다.

빈해원의 창업자인 왕씨는 산동성 영성시에 태어나 청운의 꿈을 품고 본래 인천으로 이주, 그곳에서 음식점을 열었단다. 한국전쟁으로 인천에서 1.4후퇴 때 제주도 피난하는 중에 타고 온 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군산에 안착, 후에 같이 일하던 요리사들을 합류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 메뉴는 탕수욕과 간짜장, 짬뽕 등이다.

 

군/산/짬/뽕의 화려한 등장… 초마면 vs 나가사끼 짬뽕일까

중화요리는 다양한 내용의 음식들이 있다. 자장면과 탕수욕, 깐풍기, 깐쇼새우 등 모두  20여 가지에 달한다.

과거 베이붐 세대들의 졸업식 날이면 한 번쯤은 중국 음식을 먹었던 추억이 있을 테고, 최근 코로나 19여파가 불러온 비대면(언택트)시대의 대표 메뉴 중 하나가 중화요리다.

이 화교세프들은 선조들로부터 전수된 짬뽕 맛을 군산특유의 맛으로 발전시켜왔고 장인정신으로 무장, 반백년 넘게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군산만의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이 군산짬뽕.

왜 군산에서 유독 짬뽕이 더 강조되고 있는 걸까.

아마 짬뽕투어객들이 선정한 전국 짬뽕 4대 천황 또는 5대 천황의 중화요리 유명세가 불러온 입소문(?)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지…

전국 반열의 복성루와 수송반점, 지린성, 쌍용반점 등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집인 빈해원을 비롯한 홍영장, 영화원, 영빈각, 제일반점 등 중국집들도 본격 가세했다. 군산은 이런 화교와 토착세프들의 노력으로 중화요리에 관한 한 전국 최고 맛집단지로 부상한 지 오래다.

한마디로 블로그와 전통의 힘이 이끈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중화요리의 맛도 일품이지만 최근 인터넷과 각종 사회관계망(SNS) 등에서도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군산은 그야말로 짬뽕요리의 천국과 같은 곳이지만 짬뽕의 유래에 대한 연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인구밀집도 등을 고려할 때 단연 최고이고 전국적인 맛집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짬뽕의 메카’다.

왜 군산의 짬뽕요리가 전국을 좌지우지하는 걸까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이젠 그 원류, 아니 정체성에 대한 관심도 가질 때가 아닐까 싶다.

군산시는 짬뽕의 전국화를 위한 관광자원을 목적으로 3년째 발을 동동구르고 있을 뿐 아니라 짬뽕(특화)거리까지 만들어 새로운 관광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짬뽕의 탄생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보통 짬뽕이 맛만 있으면 되는 거지, 그 원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이도 있다.

그것은 아니다.

얼마 전, 중국의 문화공정처럼 김치도, 한복도 자기네의 것이라고 전세계 상대로 우기고 있은 상황을 고려할 때, 짬뽕을 비롯한 모든 음식이 자신들의 것이라 억지 주장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 연원을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을까.

문화는 흐르고 돌고 유행을 거쳐 새롭게 형성되는 흐름이 있다.

이런 점에서 화교들에 의해 전파된 음식이 한국화되는 과정을 연구하고 고찰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전국적인 짬뽕도시답게 이제라도 ‘짬뽕의 원형’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해야 ‘짬뽕 수도’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시기에 군산시가 만든 ‘이웃사촌 화교를 만나다’라는 책자에서 박찬일 세프이자 음식칼럼니스트의 짬뽕 원류 분석은 매우 의미있는 연구물이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우리의 짬뽕은 일본 나가사키 짬뽕의 후손(?)으로 치부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박 세프는 전혀 다른 접근을 통해 우리의 안일함을 일깨워줬다.

그는 ‘초마면(炒碼麵: 하연짬뽕)에서 짬뽕으로’ 아니, ‘중국 산둥 면(麵)의 한국화 과정’으로 봤다.

그가 이런 접근을 한 이유는 다소 분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나가사키 짬뽕의 탄생 현장에 대한 방문과 산둥성 출신 노장 요리가들의 회고담을 다뤄 본질적으로 달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군산에서 활동해온 화교요리가의 메뉴판에는 짬뽕이란 것 대신 초마면만 있었고 인천출신 화교요리가도 하얀국물의 ‘백짬뽕’이라는 메뉴가 있었다고 술회했다.

첫째, 이들 화교 요리가들은 오늘날 중국집에서 거의 취급하지 않는 우동에 대해서는 많이 나오지만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초마면 또는 짬뽕에 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 점으로 볼 때 나가사키 짬뽕과 연계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둘째, 짬뽕이란 어원이 ‘이것저것 마구 섞인 상태’를 말한 경우로 쓰이고 있는 사례가 그 당시 신문에서도 나온다는 점이다. 다만, 언어적인 측면에서 그 당시 그 말이 만들어진 것을 차용한 것은 인정된다.

끝으로, 가장 유력한 내용으로는 초마면이 짬뽕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기사가 1960년대 신문에 검색된다는 점에서 볼 때 양쪽의 출발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본격 짬뽕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였던 만큼 ‘짬뽕의 일본 전래설’은 부합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이런 근거로 볼때 박 세프의 최종 결론은 이렇다. 한국의 짬뽕은 중국 산둥출신 화교 요리사들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점차 현지화됐을 뿐 아니라 남한의 독자적인 음식이란 것이다. 일본 나가사키 짬뽕을 만든 진평순(1873~ 1939)의 시카이로(四海樓) 반점처럼 요리사의 손길을 따라 다양하게 재창조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시사했다.

한국인 좋아하는 해물과 그 재료수급의 위축에 따른 볶음 기술의 간소화 등으로 굳이 볶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다량의 맵고 시원한 국물에 대한 선호(취향) 등이 합쳐진 것이라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노장 화교요리가들의 생존 구술채록작업 등의 연구수행을 하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기도 하다.

박 세프와 같은 주장한 이가 있는데 고영 음식문화연구자다.

그는 한 신문의 칼럼에서 ‘짬뽕은 중국 남부의 면 요리 기술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초마면은 일본 나가사키 짬뽕을 만든 시카이로 반점의 연대기에도 없다’고 지적했다.

‘군산짬뽕은 어디서 기원됐을까’란 연구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100년 후에 새로운 음식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원형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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