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중 야구팀, 전북 최초 전국대회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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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중 야구팀, 전북 최초 전국대회 참가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4.02 12: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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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군산중학교./사진=군산야구 100년사
1930년대 군산중학교./사진=군산야구 100년사

 

군산중학교(아래 군산중)는 1923년 5월 23일 개교하였다.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중등교육 시설로 학제는 5년제였다.

야구부도 일찍이 창단된다.

군산중 야구팀은 1928년 여름 조선체육협회가 주최하는 제8회 전조선중등학교대회(제14회 전국중등우승야구 조선예선대회)에 출전한다.

따라서 군산중은 전북 최초로 전국규모 학생야구대회에 참가한 학교가 된다.

이 대회는 전국에서 18개 팀(경성사범, 용산중, 군산중, 휘문고보, 청주농업, 목포상업, 평양중, 경성상업, 부산중, 배재고보, 원산중, 경성중, 인천남상, 부산1상, 대구상업, 대구중, 대구고보, 진남포상공)이 참가하였다.

경기는 그해(1928) 7월 28일~8월 1일까지 경성운동장과 용산 만철구장에서 펼쳐졌다.

군산중은 휘문고보와 1차전에서 5회 기권패(콜드게임 패) 당한다.

당시 휘문고보는 야구 명문으로 순수 조선인 학생으로 구성되어있는 반면 군산중은 남촌(南村), 등전(藤田), 중서(中西), 길미(吉尾), 유상(有常), 십본(辻本), 김판술(金判述), 등전무(藤田茂), 분자원(盆子原) 등, 김판술을 제외한 선수 모두가 일본인 학생이었다.

군산중은 17회 대회와 19회 대회에도 참가했으나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한다.

1929년 7월 28일 경북 대구에서 열린 제9회 조선중등학교대회에도 참가한다.

그해 8월 13일 일본 고시엔(甲子園)에서 열리는 제15회 전국중등우승야구대회'를 앞두고 열린 예선대회였다.

그러나 군산중은 첫 경기에서 탈락한다. 조선 예선대회는 참가팀(21개)을 서울과 대구로 나눠 각 우승팀이 8월 초 재경기를 갖고 승리한 팀이 고시엔 대회에 출전하는 방식이었다.

군산중은 1933년 아사히(朝日) 신문이 주최하는 전 일본중등우승 야구대회에도 출전한다.

전 일본중등우승 야구대회는 그해 8월(12일~15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열렸다.

군산중은 대회 마지막 날 추전중(秋田中)과의 경기에서 2시간 넘는 접전을 펼친 끝에 7-5로 승리하고 귀국한다.

군산중 야구부는 1945년 광복과 함께 해체된다. 그리고 이듬해 정윤기 교사 노력으로 부활한다.

그 후 지방 및 중앙대회에 연거푸 출전, 우승컵과 우승기를 거머쥐는 영광을 누린다. 야구 평론가들에게 기량이 뛰어난 강팀으로 인정도 받는다.

1951년 학제개편으로 3년제 중·고로 분리되면서 야구부는 중학교에 존속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우승의 주역 이진영, 정대현과 김성한 전 KIA타이거즈 감독, 석수철 군산상고 감독 등이 군산중 출신이다.

조선 학생들, 차별과 멸시 속에 ‘민족 혼’ 지켜

군산중 정원(충경원)에 세워진 학도의용군 충혼탑/사진=조종안 기자
군산중 정원(충경원)에 세워진 학도의용군 충혼탑/사진=조종안 기자

군산중은 호남 명문으로 일본인들의 자랑거리였다.

본관 낙성식(1926년 6월) 때도 사이토(齋藤) 총독 축사와 교사(校舍) 사진이 신문에 실릴 정도로 중앙의 관심 또한 대단했다.

기록에 따르면 1회 졸업식 때 총 33명(일본인 31명, 한국인 2명)을 배출하였다.

조선인 입학이 매년 2~3명에 그치자 자녀교육에 뜻을 둔 군산 조선인 유지들은 ‘전교생의 1/3은 조선 학생으로 채워져야 한다’며 학급 증설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다.

그들은 자주 회합을 갖고 군산을 방문한 사이토 총독에게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1930년 10학급으로 편성하면서도 조선인 자녀 입학 문제는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조선인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들의 냉대와 감시, 차별대우 속에서도 우리의 ‘민족 혼’을 지켜나갔다.

1931년 6월 군산에 거주하는 조선인 학생들이 충무공 이순신장군 유적보존을 위한 모금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그들은 추모 성금 3원 20전을 모아 <동아일보> 군산지국에 전달하는 것으로 충무공의 높은 호국정신을 기렸다.

조선인 학생들은 중일전쟁(1937)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와중에 직·간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고 교육도 크게 피해를 입었다.

한국전쟁 때는 군산에서 많은 학생이 학도병(학도의용군)으로 전선에 투입되었고, 그중 군산중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사자(97명)를 낸 학교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도 군산중학교 충경원(정원)에는 학업의 꿈을 못다 이루고 군번도 계급도 없이 장렬하게 산화한 호국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 충혼탑(忠魂塔)이 세워져 있다. (계속)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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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길 2020-04-03 06:29:03
우리고장출신 김판술선수이름이 기록이 너무좋아요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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